고종 황제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으로 갔으나 가는 도중에 한일합방(韓日合邦)이 이루어져 그는 나라 없는 무적자(無籍者)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남아 공부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작심하였습니다. 먼저 대학 과정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다행히 그의 영어 실력이 뛰어났던지라 워싱턴 디시에 있는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조지 워싱턴 대학을 졸업 후 하버드 대학 석사 과정으로 진학하여 정치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를 받은 이승만은 다시 프린스턴 대학에 박사 과정으로 입학하여 짧은 기간에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박사 논문 지도 교수가 후일에 미국 대통령이 된 Wilson 박사였습니다.
그가 박사 학위를 받은 논문이 탁월하였기에 윌슨 박사가 대통령이 된 후에 국회에서 시정 연설하는 자리에서 Dr. Syngman Rhee의 논문을 인용하여 연설하기도 하였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그에게 권하기를 미국 시민권을 받아 대학교수로 취업하라고 권하였습니다. 그의 은사였던 Wilson 대통령도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독립운동을 펼치라고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는 자신은 코리아의 독립에 헌신한 사람이기에 미국 국적을 받을 수 없노라면서 오로지 조국의 독립에 일편단심 독립운동에만 일생을 바치겠노라 하였습니다. 그의 결심은 철석같아서 마지막까지 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하고 국적 없는 낭인(浪人)으로 지났습니다. 그가 한번 뜻을 세우고 고집을 부리면 누구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의 그런 고집이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지게 되는 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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