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5천년 역사에서 처음 민주주의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48년 5월 10일의 첫 선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유엔에서 결의하기를 1948년 5월 10일에 남북한이 동시에 총선을 실시하여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헌법을 제정하고 그 헌법을 따라 정부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그 선거는 유엔 감시 하에 남북이 공정한 선거를 치르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북녘은 소련군의 보호 아래 김일성이 정부를 탄탄히 조직하고 있었기에 유엔 선거 감시단이 38선을 넘어 북한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남한만의 선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박헌영이 위조지폐의 범죄로 체포령이 내려 북한으로 도피한 후 남한 공산당은 전성기에 비하면 많이 약하여졌습니다.
그러나 원래 조직에 능한 공산당이었던지라 박헌영의 후계자들이 해주에 내려와 지휘하는 박헌영의 지휘를 받으며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1948년 5월 10일의 선거에 참여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이었습니다. 조선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이었던 홍민표는 대표인 김달삼을 통하여 북한의 박헌영에게 선거에 참여하자, 참여하면 국회의원 정원 200표 중에 절반은 달성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북에서 박헌영, 김일성, 소련군 대표 3인이 모여 의논하여 선거를 보이콧하고 테러로 선거가 열리지 못하도록 하자는 결정을 하고 남한 노동당에 지시하였습니다. 그래서 남한만의 선거가 열렸습니다. 선거판이 난장판이 되었으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국민적 열망이 워낙 강하였던지라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 전국에서 198명의 의원이 선출되었습니다. 5월 31일에 첫 회의가 열렸습니다. 의장으로 뽑힌 이승만 박사는 기도로 회의를 시작하였습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 중에서 기도로 시작되어 그 기도 전문을 대한민국관보 1호로 올린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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