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영원한 불멸의 웃음을 | 운영자 | 2020-07-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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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6:8-15절 개역개정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보라! 영원한 불멸의 웃음을
행 6:8-15, 7:1-60 성경에 나타난 웃음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주지 아니하신즉 /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욥 8:20-2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도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시 126:1-2). 신앙의 목적과 뜻을 위해 주린 자는 복이 있고 배부름을 얻을 것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이요(눅 6:21) 인간 생활 가운데 웃음을 잃고 산다는 것은 가장 괴로운 생활일 것입니다. 가정이 웃음을 잃을 때 바로 그것이 지옥입니다. 웃음을 잃은 가정이나 사회는 메마른 곳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만나는 사람끼리 그 입술에 웃음을 머금고 교환하는 목례는 사회를 한결밝고 명랑하게 해줍니다. 남편의 웃음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은 호수처럼 트일 것이고 아버지의 웃음을 대하는 자녀들의 마음은 행복할 것입니다. 자기가 미워하던 원수의 얼굴에서 웃음을 바라보는 순간 모든 원망과 증오마저 자취를 감추고 그 원수까지 사랑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1. 스데반의 웃음 기독교 최초의 스데반 집사는 동족 유대인들을 상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전신이 터지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습니다. 그의 육체는 수많은 원수들이 던지는 돌무더기 속에 생매장을 당하고 말았으나 그의 얼굴에는 그 최후의 엄숙한 순간까지도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거짓 증거하는 터무니없는 무고에도 스데반 집사의 얼굴에 피었던 웃음의 꽃은 시들이 않았습니다. 모략과 중상이 겹치고 증오와 위증이 연발되는 억울한 재판정에서도 스데반 집사의 얼굴에는 오히려 천사의 모습을 방불케하는 행복한 웃음만이 빛나고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순교자의 웃음속에 기독교의 찬란한 역사는 출발된 것입니다. 억울함을 당하여도 사라지지 않는 웃음, 어처구니 없는 중상과 모략에도 빼앗기지 않았던 웃음!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그 빛을 잃어버릴 수 없었던 그 불멸의 웃음 이것은 후에 오늘 우리의 기독교 신자들에게 주는 위대한 희망과 용기의 원천입니다. 암흑과 불안만이 현실을 둘러싼 이 어두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웃음이 있어야 끝까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무의미한 생활의 반복과 가치 의식을 상실해 버린 피동적인 생활 속에서 권태감을 느끼고 살아가야할 인간들의 사회 속에서는 웃음이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이 앞서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권태가 앞서는 이 퇴폐적인 사회 풍조는 우리의 얼굴에서 웃음의 빛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가졌던 그 위대한 신앙 인격이 담겨지기만 하면 우리에게도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은 올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웃으며 살다가 웃으면서 잠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일생이 윤택하고 평탄했던 것도 아닙니다 고난과 시련이 그를 둘렀고 동족의 증오와 투기가 그에게 돌질을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천사와 같은 아름다운 웃음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행 6:8-10, 7:25). 2. 영원한 불멸의 웃음은 은혜와 권능의 소산이다. 은혜와 권능은 믿음의 소산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스데반 집사의 웃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신앙의 소산입니다. 신앙에는 권능이 따르는 법입니다. 신앙은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무기라고 말했습니다(요일 5:4). 성도 여러분, 능력있는 신앙을 가집시다. 스데반 집사의 신앙이 한없이 부럽기만 합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고 그의 생활에는 활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신앙 앞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 하고 분골쇄신(粉骨碎身) 되더라도 할 일은 했다. 영원한 불멸의 웃음은 극심한 고난과 죽음의 세력앞에서도 그의 얼굴에 천사와 같은 광채를 담았던 것입니다. 왜 믿는다 하는 성도가 불안해합니까? 왜 이맛살을 찌푸리고 다닙니까? 성령과 지혜와 권능을 받아 살아갑시다. 우리 마음 속에 불완전한 것들이 담겨있을 때 우리의 웃음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권세 명예 물질 남편의 사랑만을 가득히 채워놓고 하나님의 사랑을 용납지 아니한 여인의 얼굴에는 언젠가는 웃음을 잃어버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어두운 구름이 덮이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내 마음을 채우고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채워지는 날에 우리의 얼굴은 언제나 웃음으로 장식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이 신앙과 은혜로 활발히 움직일 때에 우리의 웃음은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일 수 없는 것처럼 일하는 자의 마음에는 슬픔과 불안이나 증오나 질투와 시기나 그밖에 어떤 불행의 요소도 거기에 끼어들 틈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과 능력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의 가슴 속에 불안의 이끼가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충성과 봉사의 정신 일사각오 순교정신 가득찬 그의 영혼에는 증오와 고뇌의 독소를 용납할만한 틈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한 끓어오르는 감격과 솟구쳐 오르는 충열에 일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신앙과 능력이 충만한 성도! 만일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로다(고전 9:16)라고 절규한 사도 바울의 심정과 같이 전신이 돌에 맞아 터지고 그 돌무더기 속에 생 매장을 당해도 복음을 위해 일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스데반 집사의 충성 바로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보여주는 인생의 횃불입니다. 믿음과 지혜와 성령 충만한 권능을 받자!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만날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 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9-13) 고 하셨으니 기도합시다. 그리고 일합시다. 우리 마음이 성령의 은혜로 충만해지고 믿음으로 채워지는 날 우리 얼굴에 웃음이 담겨질 것이요. 우리의 생활이 활력으로 움직여지고 그리스도를 위한 충성과 정열로 충만해질 때에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영원한 불멸의 웃음으로 찬란히 빛나게 될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믿음과 권능으로 충만하여 그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의 신앙과 주님을 위한 그의 동적(動的)인 생활이 그의 웃음을 영원한 것으로 승화시켰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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