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대통령 이승만 177 | 운영자 | 2022-06-29 | |||
|
|||||
건국 대통령 이승만 177 제 8 장 한미 동맹, 한반도 평화의 조건 (지난호(3/6)의 이야기 끝부분: 지리적인 거리의 문제도 있다. 중공과 소련은) 반공 포로 석방, 이승만의 결단 ③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쳐내려올 수 있지만, 미국은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미군이 또다시 참전할지도 미지수이지만, 설령 참전한다고 해도 이미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승만은 휴전을 ‘한국에 대한 사형 집행장’이라고 규정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에게, 한국이 휴전 협정을 수락하는 것은 마치 ‘아무런 항의도 없이 사형 선고(a death sentence without protest)’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국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 동양의 선비요 서양의 신사적인 풍모를 지녔던 이승만은 깡패와 싸움닭이 되었다. 그는 집요하게 미국이 한국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 미국은 이 대통령의 거듭된 조약 체결 요구를 거절했다. 상호 방위 조약 대신, 미국이 이승만을 회유하려고 꺼내 든 카드는 “대(大)제재(制裁) 선언(The Greater Sanctions Declaration)”이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약속이 담긴 미끼였다- -“한국군을 20개 사단으로 증강시켜 준다. 미군의 대부분은 오키나와로 철수시킨다. 한국의 안전은 16개의 유엔 참전국들이 공동으로 보장한다. 만약 적이 다시 쳐들어올 경우에는 전쟁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공표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5월 25일 주한 미국 대사 브리그스와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를 통해 이승만에게 전달하였다. 하지만 우리 민족 최초의 국제법 박사이며, 미국으로부터 숱한 거절과 냉대를 받아 왔고, 결국에는 독립과 건국에 있어서 미국의 논리를 이긴 적이 있는 이승만이 그 정도의 회유에 넘어갈 리 없었다. 16개 나라가 공동으로 한국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우리의 건국 과정에서 유엔 8개국이 위원단을 파견했었다. 8개국 간에도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의견이 달라서, 결국에는 모윤숙을 활용한 미인계로 겨우 5·10 총선거를 실시할 수 있었다. 16개 국도 마찬가지로 이해 관계가 복잡했다. 전쟁 중에도 영국은 미국에게 한국을 포기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었다. 한국을 위해서 싸워 준 나라들이었지만, 그 후에 공산당에 호의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계속)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