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대통령 이승만 179 | 운영자 | 2022-06-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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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대통령 이승만 179
제 8 장 한미 동맹, 한반도 평화의 조건 (지난호(3/20)의 이야기 끝부분: 휴전을 깨 버릴 수 있는 방법, 그럼으로써 미국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 미국 지도자들을 한국이 원하는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만들 수 있는 방법—그것은 포로 송환 문제였다.) 반공 포로 석방, 이승만의 결단 ⑤ 어떤 전쟁이든 휴전 협상에서는 포로 교환 문제가 다루어지기 마련이다. 양쪽이 어떠한 조건으로 포로를 교환할지가 중요한 이슈가 되곤 한다. 문제는 공산군 포로 가운데 공산주의자가 아닌 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승만이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소수의 공산당이었지, 북한 주민들은 아니었다. 강제로 끌려 나온 북한군 젊은이들은 공산주의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공산 군복을 입고 싸우는 과정에서, 혹은 포로가 된 이후에, 공산주의의 악마성을 깨닫고 반공 노선으로 돌아선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포로 송환 협정에 따라 북한으로 돌려 보내어져야 했다. 이승만은 반공 포로들을 석방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엄청난 행동이었다. 한국 전쟁의 휴전 협상은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길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쳐서 성사된 협상이 완전히 무효가 될 수도 있는 결정을 이승만이 내린 것이다. 그것은 이승만의 결단이었고, 깡패 짓이었고, 애국심이었고, 동시에 민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만약 포로 송환 협정에 의해서 반공 포로들이 모두 북한으로 돌려 보내진다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 또는 죽음보다 더한 비참이었다. 실제로 스탈린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병사들을 모두 숙청해 버렸다. 자유로운 외부 세계를 보고 돌아온 이들이 소련의 독재 체제에 반감을 가질 수 있다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돌아온 병사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없애 버리는 공산주의자들이, 더군다나 반공 노선으로 돌아선 포로들을 잔인하게 처리할 것은 너무나 자명했다. 이승만은 그들을 살리고, 동시에 한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를 지켜 준 유엔군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는, 전무후무한 행동을 계획했다. 당시 포로수용소는 유엔군이 관리하고 있었다. 우리 국군은 유엔군의 작전 지휘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이승만은 유엔군 관할 밖에 있는 헌병대를 활용했다. 원용덕 헌병 사령관에게 비밀 명령을 내렸다. 거사 직전에 반공 포로들에게 도주 경로를 알려 주고 헌병대로 하여금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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