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54: 탐욕의 대명사 아합 2 | 운영자 | 2020-06-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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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基礎) 32, 엘리야 54 제목 ; 탐욕의 대명사 아합 2 [왕상 21:1-16] 왜 아합은 이렇게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었는가? 1. 현재의 승리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2. 말씀이 No라고 할 때 쉽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 나봇은 하나님의 말씀에 No이기 때문에 자신도 No라고 대답하였다. [왕상 21: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 지로다 하니 (2) 이 말을 듣고 아합 왕은 자리에 누웠다. [왕상 21:4]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할 때 쉽게 포기하고 잊어버리면 되는데, 그것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적>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면 쉽게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만 매달리는 것은 허락해 주실 때가 있다. 그 때에 “야, 응답을 받았다”고 좋아한다. 그러나 이것은 허락이 아니라 돌아가는 길이다. 스스로 깨달으라고 내버려두시는 것이다. <악(惡)의 대명사 이세벨> 1. 자신의 거짓 꿈을 위해 간계를 꾸미는 사람이다 간계(奸計) = 간사스러운 계획이다.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나봇 동네의 장로들과 귀인들에게 보냈다. (왕상 21:9-10)을 보니까 금식을 선포하고 두 증인을 세워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 증거를 하게 하여 나봇을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이었다. 이 말대로 장로와 귀인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돌로 쳐서 죽였던 것이다. 왕상 21:9-10 그 便紙 事緣에 이르기를 禁食을 宣布하고 나봇을 百姓 가운데 높이 앉힌 後에 10 匪類 두 사람을 그 앞에 마주 앉히고 저에게 對하여 證據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王을 詛呪하였다' 하게 하고 곧 저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더라 왕상 21:13 때에 匪類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앞에 앉고 百姓 앞에서 나봇에게 對하여 證 據를 지어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王을 詛呪하였다' 하매 무리가 저를 城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고 [고후 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적>혹시 우리가 이런 간계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끝까지 참고 주님을 섬겼다. (행 20:19)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하기를)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 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왕상 21:9에서 금식을 선포하였다. 왕상 21:9 그 便紙 事緣에 이르기를 禁食을 宣布하고 나봇을 百姓 가운데 높이 앉힌 後 에 백성들에게 뭔가 중요하고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나봇이 왕을 저주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금식을 선포한 것이다. 적>오늘날도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마 7:21-2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사심이나 인간의 욕심이 조금이라도 들어가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① 사심이나 인간의 욕심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기 않기 때문이다. [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전심 = 100% 이다. ② 하나님께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렘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 나니 - 나의 마음이 전심으로 아버지를 향할 때 갚아 주신다. <오늘의 결론> 아합과 이세벨은 자신들의 거짓된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밤잠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면서 계획을 세우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루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보다 더 몸부림을 쳐야 한다. 이들보다 더 밤잠을 자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움직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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