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53: 탐욕의 대명사 아합 | 운영자 | 2020-06-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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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基礎) 32, 엘리야 53 제목 ; 탐욕의 대명사 아합 [왕상 21:1-16]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어 결국은 그 포도원을 빼앗고 성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이게 하였다. 아합은 가히 탐욕(貪慾)의 대명사 였다. 그렇다면 왜 아합은 이렇게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었는가? 1. 현재의 승리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은 아합으로 하여금 당시 최대 강국인 아람과 싸워 승리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목표는 아람 왕인 벤하닷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합은 아람을 쳐서 이기는 것에 만족하고 벤하닷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고 말았다. 아직 아합은 완전한 승리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합은 현재의 승리에 만족하고 말았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2) 왕상 20:43에서 벤하닷을 죽이지 않았다고 무명의 선지자에게 책망을 받자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었다. [왕상 20:42-43] 저가 왕께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 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 이다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 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 라 히브리어=[사르 베자에프, #[e=z:w] rs]로서 이것은 “불쾌하고 언잖은 심정으로” 란 뜻이다. 예>예를 들어 하나님이 세우신 목표가 100이라면 90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왜 100까지 하지 않았으냐? 하면 오히려 화를 내서는 안된다. (3) 현재 승리에 안주하는 사람에게는 세상 욕심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됐지!”하는 사람에게는 세상 욕심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아합 왕도 자신의 승리에 안주하고 이스르엘에 별궁을 짓고 있다가 세상 욕심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갈 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예>목회자들도 어느 정도 부흥을 이룬 다음에 타락하기 시작한다. (4) 우리는 현재 승리에 안주하지 말고, 더 큰 승리를 구하여야 한다. “이 정도 선교했고, 이 정도 전도했고, 이 정도 부흥했으면 됐어!” 라고 해서는 안된다. 예>“나는 10명을 확보했다. 나는 5명을 확보했다”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왕하 13:14-17]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15)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 (16) 또 이스 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17) 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 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왕하 13:18-20]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 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번 치고 그친지라 (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20) 엘리사가 죽으매 장사하였더니 해가 바뀌매 모압 적당이 지경을 범한지라 요아스 왕이 3번밖에 치지 않았다. 요아스 왕은 [3번,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하였다. 왜 3번밖에 치지 않느냐? 5번 6번을 쳐야했다. (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부흥의 기회를 주셨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힘과 능력과 물질을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승리에 만족하지 말고 더 큰 목표를 세우고 계속 힘을 다하여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만큼의 부흥과 승리를 이루어내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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