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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과 강아(江娥)의 사랑 운영자 20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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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도 기녀인 진옥(眞玉)

정철의 호인 송강(松江)의 강()’()를 따 강아(江娥)라고 불렸다.

 

강아는 시조 문학에 있어 '송강첩(松江妾)'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시조 문헌 중에 '누구의 첩'이라고 기록된 것은 오직 강아 뿐이다..

 

대개는 기녀가 속한 지명을 따라, '남원 명기', '평안 기생' 등 기명을 적었으나, 강아는 기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송강첩'으로 기록돼 있는데 송강의 명성과 지위 때문이리라.

 

전라도 관찰사로 등용된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전라 감영에 있을 때 강아를 처음 만나게 된다.

 

당시 불과 십여 세 남짓의 어린 소녀,

강아에게 머리를 얹어 주고 하룻밤 같이했으나,

청렴 결백했던 정철은 어린 강아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다만 명예로운 첫 서방의 이름을 빌려주었다.

 

정철의 인간다움에 반한 강아는 어린 마음에도 그가 큰 사람으로 느껴졌다.

 

정철 또한 어리지만 영리한 강아를 마음으로 사랑하며 한가할 때면 옆에 앉혀 놓고

틈틈히 자신이 지은 사미인곡을 외어 주고, 장진주 가사를 가르쳐 주며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었다.

 

강아는 기백이 넘치고 꼿꼿한 정철을 마음 깊이 사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5829, 도승지로 임명받은 정철은 열 달만에 다시 한양으로 떠나게 된다.

 

강아는 그를 붙잡을 수도, 쫓아갈 수도 없는 자신의 신분과 처지에 낙담한 채,

체념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러한 강아의 마음을 눈치챈 정철은, 작별의 시를 주어 그녀의 마음을 위로한다.

 

.

 

一園春色紫薇花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펴

看佳人勝玉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莫向長安樓上望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

滿街爭是戀芳華

거리에 가득한 사람이 모두 네 고움을 사랑하네.

 

그 시에는 강아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당부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좋은 낭군을 구해서 시집을 가 잘 살고, 자기를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 었건만...

 

철부지 어린 나이에 머리를 얹은 이후로 단 한순간도 그를 잊지 못했던 강아는

관기(官妓)노릇을 하면서도 다시 정철을 만나겠다는 열망으로 십년고절의 세월을 버텨낸다.

 

기생의 처지로 다른 남자의 유혹을 거부하며 수절을 한다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정철이 북녘 끝 강계로 귀양을 갔다는 소식을 들은 강아는 이제야 정철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귀양살이를 하는 정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서둘러 행랑을 꾸리고 길을 나섰다.

 

작은 발로 삼천리 길을 걸어 강계로 달려온 강아는 위리에 안치되어 하늘 한자락 보이지 않게 가시나무로 둘러쌓인 초라한 초막에 홀로 앉아 책을 읽는 정철의 초췌한 모습에 진주같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자기 앞에 엎드려 우는 어여쁜 여인을 본 정철은 당황하며 그녀가 누구인지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전 강아는 십여 세 안팎의 어린 소녀였으니 성장한 강아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유배지의 적소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 오고 달이 떴다.

 

달빛 아래 엎드려 우는 여인을 보던 정철은 그네의 모습이 한 마리 백학처럼 느껴졌다.

 

울음을 그친 강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를 몰라보시는지요?

10년 전 나으리께서 머리를 얹어 주셨던 진옥이옵니다.”

강아는 그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것과 귀양 소식을 듣고 적거(謫居)생활을 보살피고자 부랴부랴 달려왔다는 것을 고백했다.

대 정치가이자 일세의 문장가인 정철의 유배 생활은 보기에도 가혹해 보였다.

 

정철은 실의와 비탄 속에서도 꼿꼿한 자세로 모든 현실을 받아 들이고 있었다.

침침한 호롱불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강아는 정철을 앞에 두고도 정녕 믿기지 않았고,

정철은 강아를 볼수록 살풋한 여인의 향기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말을 잃은 두 연인,

방안엔 정적만이 무겁게 가라앉는데...

 

그때 조용히 강아가 입을 열고 어린 시절 정철에게서 듣고 외웠던 사미인곡장진주가사를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네가 아직도 외우더냐?”

정철이 물었다.

 

, 나으리께서 배워 주신 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나으리가 그리울 때면 가야금을 타고 마냥 불렀던 노래이옵니다.”

 

강아의 뺨은 홍시처럼 물들고 있었다.

술상을 마주하고 거나해진 정철이 입을 열었다.

"진옥아~, 내가 한 수 읊을 테니, 너는 화답하거라.

지체해서는 안 되느니라.

 

()이 옥이라 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 일시 적실(분명)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탁월한 시인이었던 정철은 강아에게 흠뻑 빠져 노골적인 음사(淫辭)를 시의 옷을 빌어 읊었다.

 

번옥이란 분명 진옥을 은유한 것으로 남녀간의 육체적 합일을 바라는 정철의

육정이 배어 있는 시인데 지체없이 강아가 화답한다.

 

"()이 철()이라거든 석철(錫鐵)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마침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강아의 시는 당대의 대 문장가인 정철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강아는 정철을 쇠로 비유하며 멋지고 견고한 남성을 만나면, 자신의 골풀무로

녹여 놓을 수 있다며 응수했다.

 

'골풀무' 란 불을 피우는데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인데, 강아는 이를 '남자를 녹여내는

여자의 성기(性器)'로 은유하는게 아닌가

이만하면 강아는 '명기(名妓)', 뛰어난 시인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살송곳을 가진 멋있는 사내와

뜨거운 골풀무를 지닌 기생의 하룻밤은

뜨거운 정염으로 깜깜한 밤이 새하얗게 무르익어 갔다.

 

시조집 [권화악부(權花樂府)]

'鄭松江 與眞玉 끝내 받아들이지

酬答'(수답)의 기록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그날 이후, 정철의 적소생활은 조금도 괴롭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강아는 늘 그의 곁에서 기쁨을 주었고, 가야금을 연주해 주었다.

 

그러면 헝클어진 정철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흘러들었다.

강아는 단순한 생활의 반려자 혹은 기녀가 아니었다.

 

정철에게 강아는 그 이상의 존재였으며 예술적 호흡을 가능케 만들어주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던 것이다.

 

정철은 유배지에서 부인 안씨에게 서신을 보낼 때면 강아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적어 보냈다.

 

부인의 서신 속에도 강아에 대한 투기나 남편에 대한 불평보다는

남편의 적소 생활을 위로해 주는 강아에 대한 고마움이 적혀 있었다.

 

불우한 남편의 생활 속에서 남편에게 위로를 주는 여자라면, 조금도 나무랄 것이없다는

부인의 글을 받고 정철은 고마워했다.

 

강아 역시 부인의 너그러운 마음을 고마워하며 더욱더 알뜰히 정철을 보살폈다.

누구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뜨거운 애정의 강물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교류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애정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다.

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정철을 서울로 부른다.

 

정철은 유배지의 생활을 청산하는 기쁨과 나라에 대한 우국,

강아와의 이별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다.

정철을 보내면서 강아는 아쉬운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

 

오늘밤도 이별하는 사람

, 많겠지요.

슬프다 !

밝은 달빛만 물 위에 지네

애닯다 !

 

이 밤을 그대는 어디서 자오

나그네 창가엔

외로운 기러기 울음 뿐이네.

 

부인 안씨는 강아와 함께 한양에 올 것을 정철에게 권했지만, 강아는 거절하고 강계에서 혼자 살며 정철과의 짧은 사랑을 되새기며 외로운 세월을 보냈다.

 

이듬해 선조 26(1593) 1218,

정철이 강화의 우거에서 생을 마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강아는 이 세상에 정철이 없다는 가혹한 슬픔 앞에 몸부림치다가 홀연히 강계를 떠났다.

그 후, 강아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날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송강 마을에는 송강을 기리는 송강 문학관과 더불어

강아의 무덤이 모셔져 있다.

 

무덤 앞의 묘비 전면은

의기 강아묘 '義妓江娥墓'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엔 다음 글이 새겨져 있다.

 

'江娥 松江 鄭澈이 전라도 관찰사로 재임시

남원의 동기인 紫薇(자미.백일홍)를 사랑하자

세상 사람들이 松江를 따서 江娥라 불렀다.

 

松江15829월 도승지에 임명되어 江娥에게 석별의 를 지어주고 임지인 한양으로 떠났다.'

 

...(중략)

 

그 후 江娥松江에 대한 연모의 정이 깊어 함경도 강계로 귀양가 위리안치 중인

松江을 찾았으나,

임진왜란이 나자 선조의 특명으로 松江은 다시 소환되어 15927월 전라 충청도 지방의 도제찰사로 임명되었다.

 

江娥는 다시 松江을 만나기 위해 홀홀단신으로 적진을 뚫고 남하하다가 적병에게 붙잡히자 의병장 李亮의 권유로 자기 몸을 조국의 제단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적장 小西行長을 유혹, 아군에게 첩보를 제공하여 결국 전세를 역전시켜 평양 탈환의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江娥素心(소심)보살이란 이름으로 입산수도하다가 고양 신원의 松江 묘소를 찾아 한 평생을 마감하였다.

강아와 정철이 남긴 일화는 강계 유배지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둘로 갈라졌다...

 

하나는 유배지에서 나눈 사랑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임진왜란을 거점으로 강아가 의기(義妓)로 활약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임진란 이후 강아의 행적에 대한 소상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강아가 난리 중에 조국을 지키고 정철을 지키기 위해 적장 소서행장(小西行長)’을 유혹하여 큰 공을 세우고 그 이후에는 소심(素心)’이란 법명을 얻은 뒤에 입산수도했다는 일화가 있다.

 

실제로 의기로서 강아를 조명한 예는 박종화의 역사소설 자고 가는 저 구름아

통해 보여지는데...

삼공을 지낸 대 정치가 송강 정철!

그의 일생은 크게 관로의 생활, 은거의 생활, 적소(謫所)의 생활로 나뉘어 진다.

 

그리고 강호에 유배되어 은둔생활을 하는 그에게는 그의 어두운 심연에 불을 밝혀준 강아가 있었다.

 

정철을 향한 애정으로 삼천리 먼곳을 오르고 내리면서 그를 찾아온 강아의 구애(求愛)는 결국 정철을 감탄시켰다.

 

정철은 '강아'와 시를 나누고 그녀의 문학에 대한 조예와 아름다움에 반했다........

 

요컨대, 이들이 적소에서 나눈 사랑에는 단순한 육애만이 아닌 예술인의 깊고 깊은

교분이 존재했던 것이다.

 

애틋한 여심이 이루어낸 고귀한 사랑.!

 

그 후 江娥素心보살이란 이름으로 입산수도하다가 고양 신원의 松江 묘소를 찾아 평생을 마감하였다.

 

지금 강계의 땅에는 송강 정철과 강아의 사랑의 혼이 슬프게 맴돌지도.....

 

 

ㅡㅡㅡㅡ

 

 

송강 정철과 자미(진옥)의 사랑이야기.....

(백일홍꽃을 보고 자미라 하는데 남원의 시목이기도 하다.

 

송강이 전라감사로 있을 무렵이라니 정철이 48세 전후의 중년시기였던 것 같다.

 

남원 관아에 자미(紫薇)라는 동기(童妓)가 있었는데 송강이 자미의머리를 얹어주었다고 한다.(‘머리를 얹는다는 것은 옛날 처녀들이 결혼을 하면 긴 머리를 돌돌 말아 머리위에 얹고 풀리지 않도록 비녀을 꽂는다는데서 나온 말이다.)

 

당시 송강의 관찰사 시절을 그의 시에서 잠시엿보자.

 

청풍명월속에....

 

恢拓銀河弄明月(회척은하농명월)

은하연못 크게 넓혀 밝은달과 노닐고

 

栽培塢竹挹淸風(재배오죽읍청풍)

둑위에 대를 심어 맑은 바람을 들였네

一年南國巡宣化(일년남국순선화)

한해남녁관찰사로 일할적에

只在淸風明月中(지재청풍명월중)

청풍명월속에서 지냈네..

 

화자는 일년여동안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하면서 밝은달과 맑은바람과 더불어 지냈다고 술회한다.

이 시는 정철이 남원의 광한루를 크게 증축(1582년 선조 15)하고, 쓴시다. 송강은 광한루 연못을 파고,세 개의 섬(삼신산,삼신선도)을 만들어 동쪽의 방장섬에 배롱나무를 중앙의 봉래섬에는 대나무를 서쪽 오작교 옆의 영주섬에는 연정을 세웠고 호수에는 연꽃을 가득심었다.

이때 자미의 머리를 얹어주었을 때니 "자미"에 대한 사랑으로 방장섬에 자미화를 심지 않았을까.

 

이렇게 송강이 그녀만을 아끼고 사랑하자, 남원 사람들은 그녀를 송강의 이름을 따서 강아(江娥)’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꿈같이 아름다운 세월도 잠시, 도승지가 되어 서울로 전직하게 되자 송강은 자미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주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詠紫薇花(영자미화)

 

一園春色紫薇花(일원춘색자미화)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펴

纔看佳人勝玉釵(재간가인승옥채)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莫向長安樓上望(막향장안누상망)

(자미야!)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아라

滿街爭是戀芳華(만가쟁시연방화)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 모두 다 네 모습 사랑하리라

 

송강은 50세때인 1585년에 동인의 탄핵으로 담양으로 돌아가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쓰게 되는데, 사미인곡 속에 기사에 적힌 구절 "올적에 빗은머리 얽힌지 삼년이라"에 그 추억이 서려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그는 1589(54)에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우의정에 발탁되어 1천여명의 동인들을 몰아 죽이는 피의 숙청인 기축옥사를 단행한 장본인이다.

 

세월은 흘러 8년 후 1591년에, 송강은 선조께 광해군 책봉을 건의하다가 파직되어.

평안도 강계로 귀양가 있게 된다. 첫사랑은 영원히 잊지 못하는 일인지라, 그렇게 송강이 떠난 후 강아의 송강에 대한 연모의 정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강아는 조정의 당쟁에 휘말려 평안도 강계로 귀양 가 있는 송강을 찾아 수천리 길을 달려 다시 만나 본다. 강계(江界)에서의 송강과 강아의 해후에 관해서는, 아래의 한시 화답문(漢詩和答文)이 몇 수 전해온다.

 

秋日作(추일작)

 

山雨夜鳴竹(산우야명죽)

산에 비 내려 밤새 대숲 울리고

草蟲秋近床(초충추근상)

가을 풀벌레 소리 밤엔 더욱 크게 들리네

 

流年那可駐(유년나가주)

흐르는 세월 어찌 멈추랴

白髮不禁長(백발부금장)

길어지는 흰머리 막을 수 없네

 

居世不知世(거세부지세)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겠고

戴天難見天(대천난견천)

하늘 아래 살면서도 하늘 보기 어렵구나

知心惟白髮(지심유백발)

내 마음 아는 것은 오직 백발 너 뿐인데

隨我又經年(수아우경년)

나를 따라 또 한 해 세월을 넘는구나

 

시조집 권화악부(權花樂府)에 정송강 여진옥상수답(鄭松江 與眞玉相酬答)이란 기록이다. 송강이 56세 때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건의하다 신성군을 염두에 두고 있던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유배 되었다. 강계에 우거해 있을 때 만난 진옥과 함께 지낼때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정철은 목청을 가다듬어 읊는다.

 

옥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번옥 : 돌가루를 구워 만든 옥)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憾鐵)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코나

내게도 골풀무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섭철 : 정제되지 않는 철)

 

그러나 그 즈음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전쟁과 혼란의 시기였다. 선조가 특명으로 송강은 다시 복직되어 15927월 전라/충청도 지방의 도체찰사로 임명되었고, 강아는 다시 송강을 만나기 위하여 홀홀단신으로 적진을 뚫고 님을 찾아 남하하였다.

그러다 왜병에게 붙잡히자 의병장 이량(李亮)의 권유로 자기 몸을 조국의 제단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적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을 유혹하여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1593) 송강은 명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왔고 어떤 연유인지 남은 여생을 강화도에서 보내다가 (술병으로...) 송정촌에서 죽었다고 전한다. 선조 26년 계사(癸巳) 1218일의 일이다.

 

강아는 평생의 정인 정송강을 더 이상 섬길 수 없게 되자, 소심(素心)이란 이름의 여승이 되어 정성껏 송강의 묘를 지키면서 남은 생애를 송강의 모함을 풀고 신원을 복위시키려 온 힘을 쏟았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소심보살도 죽자, 현재의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 인근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묘를 정송강의 묘 곁에 정성껏 모시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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