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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 이승만(11) 운영자 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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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 이승만(11)

미군정청의 하지 중장은 이승만 박사를 심히 싫어하였습니다. 하지 장군은 좌우 합작(左右合作)이란 명분으로 신생 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의도로 좌파인 여운형과 중도우파인 김규식을 대표로 세워 신생 독립 국가 대한민국을 세우는 일에 뒷받침하려 하였습니다. 거기에다 조선 공산당에는 박헌영이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박헌영은 남한에 인민 민주주의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는 일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몰두하였습니다. 박헌영은 충청도 예산 출신으로 천재적인 조직력과 선동력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해방 직후 좌우 대립의 혼란기에 박헌영은 공산주의 정권인 인민 민주주의 정권을 세우는 데에 자신만만하였습니다.

공산주의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민중들은 공산주의가 내세우는 평등 세상 주장에 혹하여 박헌영을 지지하는 흐름이 강하였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에 투철한 당원으로 결성된 조선 공산당이 한창 때는 당원 80만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형세로 진행되었다면 남한도 북한처럼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설 형세였습니다. 그러나 박헌영은 치명적인 과오를 저질러 하루아침에 수배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당비를 조달키 위하여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찍어내다가 적발되었습니다. 박헌영처럼 영리한 사람이 위조지폐를 찍는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된 것은 2 가지 목적이 있어서입니다. 첫째는 위조지폐를 유통시켜 경제와 사회의 혼란을 일으켜 공산당 집권에 유리한 시국을 만들려는 의도였습니다. 둘째는 80만이 넘는 당원들을 이끌어 갈 자금을 확보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천우신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발각되어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었다고 살기 위하여 월북하였습니다. 해방 이후 이런 극도의 좌우 대립 기간에 이승만은 초지일관 자유 민주주의 체제라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을 품고 일체 타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런 혼란기를 거치며 이승만 정권이 탄생케 되었습니다.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일(建國日)입니다. 이승만의 승리가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요, 대한민국의 승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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