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에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북녘은 소련군이 진주하고 남녘은 미군이 진주하였습니다. 이 나라의 정신없는 좌빨들은 생각이 지나쳐 소련군은 해방군으로 오고 미군은 점령군으로 왔다고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곤 합니다. 미군이 진주하자 사령관 하지 중장은 이승만 대통령을 몹시 싫어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승만이 워낙에 탁월한 인물인데다 남한 국민들의 지지가 높은지라 미군이 다스리는데 장애 요인이 될 것 같아 그러하였던 것 같습니다. 해방 직후 이 나라의 좌우 대립이 극심하여 살인, 암살, 테러가 줄을 잇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때에 이승만 박사는 오랜 교우를 쌓은 미극동군 사령관 맥아더의 지원을 받아 그의 전용기를 타고 귀국하였습니다.
해방 직후 민중들의 성향은 소련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가 터무니없이 높았습니다. 1917년 레닌, 트로츠키 등이 차르 체제를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하였습니다. 그 후 레닌은 일제 치하에 신음하고 있는 조선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좋은 이미지로 접근하였습니다. 한반도를 소련 공산당 영향력 아래 두려는 생각으로 포섭하려 하였습니다.
레닌은 조선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으려는 속셈으로 〈빛은 동방으로부터 온다〉고 선언하면서 중국 상해에 있던 조선임시정부에 금 3 마차를 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니 조선의 식자(識者)들과 지식인(知識人)들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환상을 품는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미군 군정청에서 여론 조사를 한 자료에 의하면 해방 후 조선 민중들의 여론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앞으로 세워질 나라를 민주주의로 할 것이냐 사회주의로 할 것이냐는 조사에서 무려 87%가 사회주의를 하자는 자료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시절에 유독 이승만 박사는 탁월한 식견으로 앞으로의 세계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라야 한다고 거침없이 주창하였습니다. 그의 이런 주장이 마치 독선(獨善)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반대파가 많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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