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대통령 이승만 187 | 운영자 | 2022-07-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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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대통령 이승만 187
제 8 장 한미 동맹, 한반도 평화의 조건 (지난호(5/15)의 이야기 끝부분: 덜레스는 음으로 양으로 한국과 이승만을 도와주었던 인물이었다.) 이승만-덜레스 회담과 한미 상호 방위조약 ② 그는 전쟁이 터지자, 미국이 즉각 참전하도록 유도했다. 이승만 제거 계획인 에버레디 작전을 놓고 대통령 및 군 수뇌부와 회의를 할 때도 이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편에 섰다. 미국이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약소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는데, 이 대통령을 체포하면 그것은 명분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여러 면에서 고마운 인물이다. 6·25와 덜레스의 인연은 참으로 깊었다. 전쟁 발발 1주일 전에 한국을 방문했고, 국무장관이 되어 휴전 협정을 성사시킴으로써 전쟁을 마무리하였다. 6·25 전쟁이 덜레스와 함께 시작되어 그와 함께 끝난 것이다. 이승만과 덜레스의 회담은 사실 그전에 예정되어 있었다. 이승만이 포로 석방이라는 ‘폭탄’을 던지자, 국무장관 덜레스가 이승만을 초청했다. 이승만은 바빠서 갈 수 없다고 거절하면서, 덜레스에게 오라고 했다. 한국뿐 아니라 수많은 나라의 명줄을 실제로 쥐고 있던 미국 국무 장관에게, ‘내가 시간이 없으니 당신이 비행기 타고 오라’고 했으니, 대단한 배짱이다. 덜레스 역시 비상 상태에 빠져 있던 워싱턴을 비울 수 없어서 특사 로버트슨을 파견했다. 그리고 휴전 협정 후 결국에는 덜레스가 제 발로 찾아왔다. 회담이 서울에서 이루어진 것 자체가 이승만의 판정승이었다. 덜레스도 그 점을 인정했다. 이승만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나 자신이 직접 이곳으로 온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소. 강대국의 국무 장관이 약소 국가 대통령을 만나, 자기들의 정책을 약소국의 정책과 합치되도록 노력하기 위하여 멀리 바다 건너 찾아온 것은, 역사를 통해 한 번도 없었던 전례 없는 최초의 사건이 오.” 이승만은 그의 평생을 통해서 줄곧 성취해 왔던 그 ‘최초’를 여기에서 또 한 번 획득했다. 솔직한 덜레스에게 이승만도 솔직히 생각을 밝혔다. 그는 우리 민족 전체의 생명과 희망이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달려 있음을 인정했다. 아울러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에서, 미국은 ‘한국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임을 솔직하게 토로했다(차상철, 유영익 편, p. 164). 덜레스와 이승만은 미국이 한국을 지켜 준다는 큰 틀에서는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방법과 규모에 있어서는 치열하게 맞부딪쳤다.(계속)
(이호 著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 II」에서) *출처 ; 2022/5/22, 오벧에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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