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서울구치소에서 안양교도소로 옮겨졌습니다. 안양교도소는 누범자 4300여명이 수감되어 있는 유별난 교도소였습니다. 그곳에서 신실한 크리스천인 원충연 대령을 만났습니다. 그는 기독교반 반장이었습니다. 한국 교도소에는 종교반이 있어 기독교반, 불교반, 천주교반 3 종교반이 있어 재소자들이 자기가 원하는 반에 속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하였습니다. 각 반에 속한 숫자가 대략 4대 2대 1 비율이었습니다. 기독교반이 400명이면 불교반이 200명, 천주교반이 100명 수준이었습니다. 이 비율이 아마 우리나라 종교 인구의 비율일 듯합니다.
기독교반 반장인 원충연 대령은 사형수로 지나다가 무기수로 감형된 분으로 그 인격이 고상하여 동료 재소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하루는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시간에 그에게 물었습니다.
〈원 대령님, 같은 빵잽이(재소자들을 부르는 감옥 안의 은어)들끼리 어찌 그렇게 존경을 받습니까? 나는 성직자이지만 신도들로부터 그만한 존경을 받지 못하는데 그렇게 존경 받을 수 있는 Know-how가 무엇인지요?〉
나의 물음에 원충연 대령이 진지한 얼굴로 답하였습니다.
〈73번 선생님, 내가 동료 재소자들로부터 존경 받는 것은 내 인격이 훌륭하거나 내 신앙이 깊어 존경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그렇게 존경 받는 이유가 무엇이요? 좀 배웁시다.〉
그랬더니 그가 자신의 간증을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박정희 장군의 공보실장이었습니다.〉 〈아니 공보실장이라면 직계 중의 직계일 텐데 왜 무기수로 징역 살고 있는 거예요?〉
〈예, 이야기가 깁니다. 저의 아버지가 독립운동하다 일본 순사 고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전도사가 되어 전라남도 강진에서 교회 전도사로 섬기며 나를 길렀습니다. 내가 자랄 때 어머니는 항상 내게 이르시기를 "충연아, 너는 나중에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지 세상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반 대학으로 진학할 사정이 안 되니까 학비 부담이 없는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하였습니다. 육사를 다니는 중에 생도대장도 하고, 졸업 후에는 동급생들이 대위 달 때 소령 달고, 중령 달 때 대령 되고,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하나님의 일은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박정희 장군의 인정을 받게 되어 참모로 있다가 5.16 혁명 난 후엔 공보실장의 보직을 받게 되었습니다.
공보실장직을 맡으면서 열심히 일하였는데 모시는 박 장군께서 혁명거사를 일으키던 때는 국가 질서만 회복하면 군으로 되돌아간다는 공약을 걸고 시작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대통령에 출마하려는 마음을 품게 되면서 내 운명도 빗나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타고난 성품이 고지식하여 장군님께 거듭 권하였습니다. 〈처음 혁명거사를 일으킬 적에 국민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정치는 민간에 맡기고 우리는 군으로 돌아갑시다.〉
이렇게 거듭 건의 드리니 박 장군께서는 이미 대통령이 되려고 작심하고 있는데 내가 그런 건의를 거듭 드리니 괘씸히 여겨 반혁명사건으로 몰리어 힘든 고문을 거쳐 사형 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문동 육군보안사의 취조실에서 조사 받을 때입니다. 고문이 너무 심하여 기절하였다 깨고 다시 고문 받다 깨곤 하기를 되풀이 하였는데 한번은 기절하였다 깨어났더니 온몸이 분해된 듯이 손가락도 꼼짝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손발에서부터 식어지기 시작하는데 심장 쪽으로 굳어 왔는데 내 직감으로 이제 죽는 게로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회개의 눈물이 나기를 "내가 군인으로서 나라 위한 일로 죽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지를 못하고 세상 일 하다 죽는 것을 회개합니다." 하며 회개 기도를 드리는데 눈에서 눈물이 나와 뺨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때 난데없이 천정으로부터 밧줄이 내려오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줄을 잡으라.〉
이 음성을 듣고는 즉시 힘이 솟아나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줄을 잡았습니다. 그때 다시 두 번째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줄을 놓지 말지어다.〉
두 번째 음성을 들을 때에 불기운이 자신의 몸을 휘감는 듯하더니 힘이 솟으며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내가 이런 은혜를 받았는데 어찌 감옥생활을 허투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난 옥살이가 힘들 적마다 그날의 밧줄을 생각하고는 정신을 가다듬곤 합니다. 그래서 내가 동료들로부터 존경 아닌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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