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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균과 이순신이 주는 교훈 | 운영자 | 2022-06-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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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과 이순신이 주는 교훈
*참고 원균 ; 1540-1597년 (향년 57세) 이순신 ; 1545-1598년 (향년 53세) .....................
1599년 11월 19일, 선조 31년, 풍신수길이 사망하였다. 조선에서 퇴각하라는 명령을 받은 왜군은 7년만에 보따리를 싸고 일본으로 돌아갈 채비를 차렸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를 가지고 퇴각하는 왜군을 대적해야 하는 것이 노량해전의 임무였다. 이순신은 명나라의 진린 제독과 합동 작전을 벌렸다. 이순신의 해군력은 모두가 12척, 아주 적은 숫자였지만, 도망을 치는 왜군들은 사기가 죽어 있어서 싸울 기력을 잃은 것 같았다. 왜군은 400여 척의 선박이었지만 이순신의 세력에게 격침을 당했고, 불과 몇 십여 척만이 살아 남아 도망을 첬다. 이 싸움에서 조명 연합군은 거의 모든 적군을 섬멸 하였으나 애석하게도 이순신 장군은 적군의 유탄을 맞아 최후를 마쳐야 했다. 예상하건대 그 때에 이순신은 자기 자신이 일부러 죽음을 자초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순신이 다시 복직이 되여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되였을 때에 오직 12척의 해군력을 이순신이 인계 받았다. 조정에서는 그 12척을 육군에 편입하여 수륙 합동으로 움직일 것을 명하였으나 이순신은 그 어명을 거역하고 자기 자신의 지략으로 조선의 해군으로 최후의 전투에 임하였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자신은 어명을 어긴 죄로 또 어떤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니 아예 장렬 하게 장수의 최후를 마치자 하고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사가들의 해석도 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전선의 최일선으로 나가서 졸병들과 같이 싸웠던 것이고 드디어 왜군의 유탄을 맞은 것이라는 추측이다. 장수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비록 그가 전쟁에서 이겼지만, 임금의 어명을 거역한 것을 임금은 참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장수는 스스로 마지막 길을 택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손자병법서에도 있지 아니한가? 임금의 뜻에 아첨을 하면 싸움은 지는 것이고, 임금의 뜻을 거역하면 장수는 처형을 당하는 것이다. 어느 길을 가야 하나? 나라를 위한 애국의 충신만이 가야 하는 길을 이순신은 택한 것이리라. 비록 도망을 치는 왜군이었지만 이순신이 마지막 12척을 육군에 병합하고 노량해전을 벌리지 않었다면 그는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을 것이다. 의를 택하고 자신의 목숨을 버린 이순신 장군이기에 우리는 광화문 광장에 높히 서 계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우러러 보며 그의 거룩한 충정심을 가슴으로 읽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공부해야 할것이 있다. 오랜 전쟁의 그 난장판 속에서 원균과 이순신, 두 장군들간에 벌어진 여러 사건들을 놓고, 이제 우리는 그 상황을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 그들은 그렇게 앙숙이었든가? 첫째는 두 사람의 병력(兵曆)상의 문제였다. 원균은 이순신의 선배였지만 성격이 직선적이고 시기 질투가 있는 인물이었다. 이순신이 승리를 맞을 때마다 축하 보다는 질 투 심으로 처다 보았으며, 자기의 부하들을 사랑하기 보다는 승부욕에 사로 잡혀 있어서 많은 병사들을 무모하게 희생시켰다. 원균의 군대 속에 왜군의 첩자들이 잠입 하여 우굴 거렸는데도 그는 무모하였으며, 이순신을 모함하는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에 반하여 이 순신은 말수가 적고 묵묵한 실천형의 성격이었다. 처음에는 원균의 작전에 협조적이 었지만 차츰 무모한 그의 작전에 거리를 두게 되였던 것이다. 그러한 선후배 간의 거리감이 원균으로 하여금 모함의 상소를 올리게 하였던 것이다. 만일에 이 두 장군들이 서로 경쟁적 입장이 아니고 선후배로서 사랑과 협조로 이어 젔더라면 임진 왜란은 7년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 단축되었을 것이다.
둘째로 생각을 해야 할 문제점은 이순신이 삭탈 관직이 되고, 모진 고문을 받고, 죽음을 겨우 면하여, 권률의 예하에서 백의 종군을 하게 만들었는데, 원균이 이순신을 그렇게 미워했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아니 된다. 필생즉사(必生卽死)요 필사즉생(必死卽生), 반드시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살아날 것이라는 신념으로 부하를 다루고 백성들을 자비로 사랑한 장군이 이순신이었는데 왜 원균에게는그렇게 저주를 받았는가? 전투에서 승부욕 때문이었는가? 그 저주를 풀어 나 갈 길은 정녕 없었 던 것인가? 세계사 속에서 영국의 넬슨 다음으로 위대한 제독으로 추앙을 받는 사람이 이순신인데 왜 자기의 선배 원균 한 사람에게는그렇게 모질게 저주를 받았는가? 아마도 이순신은 설마 원균이 자기를 그렇게까지 모함할 것이라고 믿지를 아니 하였든 것 같다. 지금의 정치 속에서도 그러한 모함은 계속되고 있다. 세째로는 그 절박한 전쟁 속에서도 당파 싸움에 눈이 멀어 있던 동인과 서인의 세력 다툼이었다. 그러한 당파 싸움이 아니었던들 애당초 임진 왜란이 일어나지도 아니 했을 것이고, 이순신과 원균의 싸움도 그렇게 심화되지 아니했을 것이다. 당파 싸움으로 인하여 유비무환 (有備無患)의 국방철학(國防哲學)은 무너젔고, 나라가 무기력으로 탈진해 버렸다. 이러한 당파 싸움 현상은 오늘날에도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 북한의 원자 무기는 결코 남북간에 해결될 수 없는 세계적인 이슈로 등장하였는데 과연 대한민국이 운전대를 잡고 다른 강국들을 유도할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가? 미영불소중, 유엔의 안보리 최강국들이 요리를 하는 대상으로 북한의 핵무기가 등장이 되여 있는 판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자기가 해결할 수가 있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히고 있다. 강대국들이 속으로 조소를 던지고 있는 것을 문 대통령은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세계의 외교 무대에서, 우리 나라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 조국의 앞날은 캄캄할 뿐이다. 북한 간첩을 잡는 국정원이 여야 정치 싸움에 휘말려 완전 붕괴되였다. 요새는 국군의 정보 기관인 기무 사령부를 흔들어 유명무실 맹탕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참으로 한심 스러운 정치꾼들이다. 탈북민으로 가장하고 남한에 침투한 북한의 첩자 들은 이제 천국을 만난 듯이 한국 땅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게 됐다. 남한의 공산화는 멀지 않았다. 민주주의도 좋지만 나라가 망하는 길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원균과 이순신 두 장군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원수가 되였는가? 그러한 처세가 어떠 한 결과를 초래하였는가? 생각을 해 보면 알 일이다. 언제고 인간에게는 그러한 시기와 질투와 아집과 욕심이 내재하여 있기에 역사를 그릇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ㅡ오늘의 정치도 그렇지만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비교해서 고찰해 보면 새로운 철학이 깨우처 질 것이다. 일직이 2,500년 전에 “우중(愚衆)의 민주정치는 독재 정치만 못하다”고 철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하였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우중이 아닌, 현명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하고 기원한다.
★ 임진 왜란과 정유 재란의 피해는…? 2 차례의 왜란을 치루면서 조선의 국토는 초토화 되였고 백성들은 굶주림과 병마로 인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희생을 당해야 했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전국의 논경지가 3분의 1이 유실되고, 조선 관군 7만 여 명, 명나라 3만 여 명, 왜군은 14만 여 명이 전사하였고, 민간인 사망은 15만 명, 포로는 5만 여 명, 그리고 각종 10만 여 점의 문화재가 탈취되었다고 한다. 7년간 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토탈 390,000명 이다. 우리 근대사에서 최대의 희생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조선은 40년후 후금의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막아낼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여 또 한 번 전화에 휩싸이고, 일본의 경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세력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패퇴하면서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 서게 되었다. 명나라 또한 왜란과 국내의 반란 그리고 여진의 침략으로 국력이 점차 쇠퇴 하면서 나종에는 후금(청 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다. 징비록(懲毖錄)은 조선 선조 때 류성룡이 임진왜란에 대한 1592년(선조 25)에서 1598년까지 7년 동안의 일을 수기(手記)로 쓴 책이다. 저자가 벼슬에서 물러나 한거(閑居)할 때 저술하였고 1604년에 (선조 37년) 저술을 마쳤다. 설마 설마하고 안이한 생각을 하다가 나라를 망친 이야기들의 수기집이다. 이 책에 이 순신 장군의 순수한 충절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기록이 담겨저 있다. 대한민국의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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